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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은 루저들이나 하는 것 
 
 
 
 
 
 
 
 
 

 Column

 경쟁은 루저들이나 하는 것

 2026년 9월

 “경쟁은 루저들이나 하는 것이다.”

 이런 말을 하면 대개 두 종류의 반응이 나온다.

 첫째, 경쟁에서 이긴 사람이니까 저런 소리를 하지.

 둘째, 경쟁에서 진 사람이 정신승리하는군.

 둘 다 꽤 합리적인 반응이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경쟁에 관해서는 제법 성실하게 교육받았으니까.

 시험을 보면 등수가 나오고, 대학에는 서열이 있고, 회사에는 직급이 있고, SNS에는 친절하게 팔로워 숫자까지 표시된다. 인간이 인간을 비교하다 지칠까 봐 세상이 아예 숫자를 붙여 놓은 셈이다.

 덕분에 삶은 아주 편리해졌다.

 내가 잘하고 있는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옆 사람을 보면 된다.

 친구가 90점을 받았는데 내가 95점이면 일단 안심이다. 친구가 나보다 좋은 대학에 가면 갑자기 인생에 문제가 생긴 것 같고, 내가 먼저 취업하면 다시 조금 괜찮아진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옆 사람보다 앞에 있다는 사실은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전혀 알려주지 않는다.

 부산행 기차를 타야 하는 사람이 서울행 기차의 가장 좋은 좌석을 차지했다고 생각해 보자. 좌석 경쟁에서는 이겼다.

 축하할 일인지는 조금 애매하다.

 우리는 경로와 목적지를 자주 혼동한다.

 좋은 성적,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수상 경력은 대부분 목적지가 아니다. 무언가를 하기 위해 필요한 경로이거나 도구다.

 그런데 도구에는 숫자가 붙어 있고 목적에는 숫자가 잘 붙지 않는다.

 그래서 도구가 훨씬 매력적이다.

 “전교 3등”은 멋지게 들린다.

 “나는 앞으로 어떤 문제를 해결하며 살 것인지 생각하고 있다”는 말은 영 시원찮다. 인증서도 없고 트로피도 없다. 인스타그램에 올리기도 곤란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인생에서 더 중요한 질문은 두 번째다.

 “무엇이 되고 싶니?”

 청소년들이 지겹도록 듣는 질문이다.

 의사, 변호사, 개발자, 음악가, 사업가.

 그런데 이 질문에는 묘한 함정이 있다. 직업의 이름을 목적지처럼 생각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질문을 조금 바꿔보자.

 “너는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싶니?”

 그러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의사가 되는 것이 목표라면 의대를 원하는 학생들은 경쟁자다. 하지만 치료받기 어려운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목표라면 의사뿐 아니라 개발자, 연구자, 디자이너, 정책을 만드는 사람까지 동료가 될 수 있다.

 음악가도 마찬가지다.

 유명한 음악가가 되는 것이 목표라면 세상에는 경쟁자가 끔찍하게 많다. 기타를 나보다 잘 치는 사람은 이미 수백만 명쯤 있을 것이다. 유튜브를 열어보면 열두 살짜리가 내가 평생 연습해도 못 칠 것 같은 솔로를 연주하고 있다.

 기분 나쁜 일이다.

 하지만 내가 만들고 싶은 음악, 표현하고 싶은 감정, 사람들에게 주고 싶은 경험이 분명하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 아이의 기타 실력은 더 이상 내 인생의 문제가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과제 설정이다.

 “성공하고 싶다.”

 과제가 아니다.

 “좋은 대학에 가고 싶다.”

 이것도 아직 과제가 아니다.

 “돈을 많이 벌고 싶다.”

 아쉽지만 이것도 아니다. 거의 모든 사람이 이미 참가하고 있는 매우 인기 있는 희망사항이다.

 좋은 과제는 조금 더 귀찮다.

 
 누가 어떤 문제를 겪고 있는가. 
 왜 아직 해결되지 않았는가. 
 사람들은 지금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가. 
 그 방법에는 무엇이 부족한가.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을 하기 시작하면 대학을 보는 방식도 달라진다.

 “어디가 더 유명하지?”에서

 “내가 하려는 일을 배우기에 어디가 더 적합하지?”로 바뀐다.

 둘은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질문이다.

 첫 번째 질문에는 순위표가 필요하다.

 두 번째 질문에는 생각이 필요하다.

 안타깝게도 순위표를 보는 쪽이 훨씬 쉽다.

 물론 경쟁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입시에는 정원이 있고, 오디션에는 합격자가 있고, 스포츠에는 승패가 있다. “나는 경쟁을 초월했어”라고 선언한다고 대학이 감동해서 한 자리를 더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필요한 경쟁은 하면 된다.

 다만 경쟁을 목적지로 착각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옆 사람보다 빨리 달리는 것은 전략일 수 있다.

 그런데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가장 빨리 달리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다.

 100명이 같은 사다리를 오르고 있다고 해보자.

 대부분은 위에 있는 사람의 발뒤꿈치를 보며 더 빨리 올라가려고 한다.

 몇 명은 사다리가 제대로 놓여 있는지 확인한다.

 그리고 아주 가끔 한 명쯤은 묻는다.

 “그런데 우리 왜 이거 올라가고 있지?”

 대개 이런 사람은 처음에는 조금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

 세상에서 꽤 재미있는 일들은 그런 질문에서 시작됐다.

 그러니 경쟁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경쟁을 너무 진지하게 믿지 말라는 이야기다.

 남보다 한 칸 앞서는 데 인생 전체를 사용하는 것은 생각보다 비싼 선택이다.

 경로는 바뀔 수 있다.

 학교도 바뀌고, 전공도 바뀌고, 직업도 바뀐다.

 하지만 내가 진짜 해결하고 싶은 과제를 알고 있다면 경로가 바뀌어도 방향까지 잃지는 않는다.

 그래서 가끔은 옆 사람의 속도계에서 눈을 떼야 한다.

 그 사람이 시속 120킬로미터로 달리고 있다고 해서 초조해할 필요는 없다.

 당신과 같은 곳에 가는 사람인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어쩌면 반대 방향일 수도 있으니까.
